2380여 개 기업이 몰려 있는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이곳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데 이어 이달 초 첫 작품인 '그래핀을 이용한 오디오케이블'을 선보인 해성디에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그래핀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던 기자는 해성디에스 생산 현장부터 들렀다. 먼지 하나 없는 제조공장 입구에 종이처럼 얇디 얇은 모양의 구리(Copper) 기판이 롤 형태로 감겨 있다. 이를 540㎜×680㎜(약 34인치) 크기로 잘라낸 후 두 장씩 화학증착기(RT-CVD)로 보내 그래핀 물질을 입힌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독자적으로 개발한 RT-CVD가 1000도 이상 고열을 발생시켜 구리선 표면에 그래핀을 합성한다. 합성 시간만 따지면 10분인데, 이를 포함한 화학증착의 1회 공정은 40분이 소요된다. 현재 34인치 기준, 월 2000장의 그래핀 생산 규모를 세 배(6000장)로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핀 상용화의 주역인 류재철 해성디에스 이사는 "그래핀은 그동안 연구소 수준에서 1인치 미만의 작은 크기로 개발된 적은 있으나 30인치대 대면적 양산에 성공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류 이사는 이어 "기존에는 상용화가 안 된 시제품을 만드는 데도 최소 3시간 이상 걸렸는데 이번에는 제조 시간을 1시간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해성디에스는 지난해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소재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MRS)에서 대면적 그래핀 패널을 처음 공개해 세계 이목을 끈 지 1년이 조금 지나 첫 상용화 제품을 개발했다. 지난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오디오쇼인 '하이엔드알(High EndR) 2016'에서 세계 최초로 그래핀 합성 구리선을 적용한 오디오케이블을 공개한 것이다. 국내 오디오 전문기업 아이리버(대표 박인환)와 협력해 탄생시킨 그래핀 오디오케이블은 음향 손실이 없는 고품질의 하이파이 헤드폰과 이어폰에 쓰이게 된다.
조돈엽 해성디에스 대표는 "하이파이 오디오케이블은 높은 음질을 확보하기 위해 99.99999%의 고순도 구리선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 단결정을 주로 활용하는데, 가공이 쉽지 않아 제작비용이 매우 비쌀뿐더러 장기간 사용 시 케이블 표면이 산화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래핀을 사용하면 장기간 사용에도 산소나 수분 침투를 막을 수 있어 표면 산화가 방지돼 결국 음향손실을 막는 등 기존 단점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해성디에스는 아이리버와 그래핀 케이블 양산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며, 특히 전자부품연구원과 함께 개발 중인 '그래핀을 이용한 유해화학물질 검출 센서'를 다음달께 선보일 예정이다. 조 대표는 "그래핀 상용화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핑에 의한 표준회로와의 전위차(저항차) 특성을 지닌 그래핀을 화학물질이 지나가는 튜브 내에 감아놓으면 누수를 정확히 감지하게 된다"며 "거의 모든 공장에서는 화학물질을 안 쓰는 곳이 없는 만큼 활용도와 시장성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래핀은 앞으로 플렉시블·롤러블 디스플레이, 전기차용 슈퍼배터리, 바이오 분자진단,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것으로 예상돼 단순히 그래핀 소재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장비와 공정 기술 등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전자부품소재 업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성디에스는 2014년 5월 삼성테크윈에서 반도체부품사업부 500여 명이 분리·독립해 해성그룹(지분 60%)에 흡수된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2460억원으로, 다음달 말께 코스피에 상장될 예정이다.
■ <용어설명>
▷ 그래핀 : 탄소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나노 구조로,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실리콘보다 전자이동성이 뛰어나며 강도·신축성이 우수한 꿈의 나노 물질이다.
[창원 = 민석기 기자]